한국 식재료가 그리울 때: 영국 일반 마트에서 찾는 ‘대체 식재료’ 가이드

영국에 살면서 가장 그리워지는 것은 단연 한국의 밥상입니다. 찌개 냄새, 칼칼한 떡볶이,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물론 런던 중심가나 뉴몰든 같은 거대 한인 타운에 가거나, 대형 온라인 한인 마트(예: Oseyo, H-Mart 등)를 이용하면 한국 식재료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인 마트가 멀리 떨어진 중소도시에 거주하거나, 급하게 오늘 저녁에 한식을 만들어야 할 때 매번 비싼 배송비를 내고 며칠씩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럴 때 집 앞의 평범한 영국 마트(Tesco, Sainsbury’s, Asda)로 달려가 단 몇 파운드로 한국의 맛을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보물 같은 대체 식재료 구별법’을 총정리해 드립니다.

1. 삼겹살과 불고기용 고기: “얇은 고기가 필요해요!”

한국인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영국의 육류 컷팅 방식입니다. 영국인들은 고기를 두껍게 썰어 스테이크로 굽거나 거대하게 통째로 오븐에 굽는(Roast)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마트에 가면 불고기용이나 삼겹살용처럼 얇게 썬 고기(Thinly sliced meat)를 눈 씻고 찾아도 보기 어렵습니다.

  • 대패삼겹살/수육 대체품 -> 포크 벨리 (Pork Belly Rindless): 일반 마트 고기 코너에 가면 ‘Pork Belly slices’라는 이름으로 삼겹살 부위를 팝니다. 다만 찌개용 고기 두께로 썰려 있어서 구이용으로는 조금 두껍습니다. 이럴 때는 고기를 사 와서 냉동실에 살짝 얼린 뒤, 칼로 얇게 썰어내면 완벽한 대패삼겹살이 됩니다. 만약 껍질이 붙어 있는 ‘Pork Belly Joint(통삼겹)’를 산다면 그대로 된장과 커피가루를 넣고 푹 삶아 훌륭한 한방 수육(보쌈)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불고기/샤브샤브용 소고기 대체품 -> 비프 카르파초 (Beef Carpaccio) 또는 샌드위치용 스테이크: 에피타이저용으로 나오는 매우 얇게 저민 소고기인 ‘Carpaccio’ 제품을 사면 별도의 손질 없이 바로 샤브샤브나 불고기 양념에 재워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Sizzle Steak’ 혹은 ‘Quick Steak’라는 이름으로 파는 얇은 소고기 패티 부위를 사서 칼로 얇게 쳐내도 불고기용으로 훌륭하게 호환됩니다.

2. 밀가루 종류 완벽 구분: 부침개와 수제비의 비밀

영국 마트의 베이킹 코너에 가면 밀가루 봉지에 한국어로 ‘중력분’, ‘강력분’이라고 적혀있지 않아 멘붕이 옵니다. 대신 Plain Flour, Self-raising Flour, Strong Bread Flour 같은 생소한 이름들이 붙어 있습니다. 잘못 사면 부침개를 부쳤는데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대참사가 발생합니다.

  • Plain Flour (중력분): 글루텐 함량이 중간인 일반 밀가루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침개, 부침 가루 대체, 수제비 반죽, 칼국수 면을 만들 때 무조건 이 Plain Flour를 고르셔야 합니다. 여기에 바삭함을 더하고 싶다면 마트 아시안 코너나 전분 코너에서 Cornflour(옥수수 전분)를 사서 8:2 비율로 섞어보세요. 한국 부침가루 못지않은 극상의 바삭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 Self-raising Flour: 밀가루에 이미 베이킹파우더(소금 등)가 섞여 있는 종류입니다. 물을 붓고 가열하면 위로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스콘이나 케이크를 만들 때 씁니다. 이걸로 부침개를 부치면 눅눅하고 두꺼운 빵 전이 되므로 절대 피하셔야 합니다.
  • Strong Bread Flour (강력분): 글루텐 함량이 높아 쫄깃한 식감을 냅니다. 식빵을 굽거나 아주 쫄깃한 수제비 반죽을 원할 때 Plain Flour와 섞어 쓰면 좋습니다.

3. 국물 요리의 핵심: 마늘과 대파 대체하기

한국 요리의 생명은 마늘과 파의 듬뿍 들어간 양념 맛입니다. 하지만 영국 마트에서 파는 채소들은 외형은 비슷해도 맛의 강도가 한국과 사뭇 다릅니다.

  • 대파 대체품 -> 리크 (Leek): 영국 마트에는 한국식 거대하고 알싸한 대파가 없습니다. 대신 대파를 뻥튀기해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두께가 팔뚝만 한 ‘리크(Leek)’라는 채소를 팝니다. 서양식 탕이나 수프에 쓰이는 채소인데, 이걸 송송 썰어서 찌개에 넣거나 파기름을 내면 놀랍게도 한국 대파와 95% 일치하는 향과 단맛을 냅니다. 겉의 억센 껍질 한두 겹만 벗겨내고 안쪽 부드러운 부분을 대파 대용으로 아낌없이 사용하세요.
  • 간마늘 대체품 -> 냉동 마늘 블록 (Frozen Garlic): 매번 생마늘을 사서 칼등으로 찧는 것은 고된 노동입니다. 마트의 냉동 식품 코너(Frozen vegetables)에 가면 간 마늘을 아주 작은 큐브 형태로 얼려서 파는 제품(Frozen Chopped Garlic)이 있습니다. 요리할 때 찌개나 볶음 요리에 이 큐브를 한두 개씩 툭툭 던져 넣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한국의 다진 마늘 통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쓰는 것과 똑같은 편리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4. 아시안 코너(World Foods)의 숨겨진 보물들

최근 영국의 대형 마트들은 ‘World Foods’라는 이름의 아시안/인터내셔널 식재료 코너를 대단히 크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굳이 한인 마트에 가지 않아도 이 구역만 잘 뒤지면 꽤 많은 한식 재료를 건질 수 있습니다.

  • 숙주나물 대체품 -> 빈스프라우트 (Bean Sprouts): 야채 신선실이나 아시안 코너에 가면 팟타이용 등으로 숙주나물을 흔하게 팝니다. 콩나물(Soybean Sprouts)은 찾기 어렵지만, 이 숙주나물을 살짝 데쳐서 참기름, 소금, 간 마늘에 무치면 완벽한 나물 반찬이 완성됩니다.
  • 간장 대체품 -> 라이트 소이 소스 (Light Soy Sauce): 간장 코너에 가면 주로 중국/동남아식 간장인 ‘Dark’와 ‘Light’가 있습니다. 색이 진한 Dark는 찜닭처럼 색을 낼 때 좋고, 일반적인 한국 국간장이나 진간장 대용으로는 ‘Light Soy Sauce’를 고르시는 것이 간을 맞추기에 훨씬 수월합니다.

낯선 타국 땅에서 고향의 맛을 내지 못해 서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변의 평범한 영국 마트 속에서도 매의 눈으로 식재료의 본질을 파악하면, 얼마든지 주방에서 뜨끈하고 칼칼한 한식 식탁을 뚝딱 차려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은 테스코에서 리크와 포크 벨리를 사서 시원한 파기름 삼겹살 볶음을 시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위로 스크롤